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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fter Long Silence
  • Down by the Salley Gardens
  • The Rose of the World
  • The Sorrow of Love
  • When You Are Old
  • Sailing To Byzantium
  • The Stolen Child
  • Easter 1916
  • He Wishes for the Cloths of Heaven

    [ Image from Luminarium ]




  • W.B. Yeats (1865-1939)

    Yeats의 소년기와 청년기는 더블린과 런던 그리고 슬리고에서 보내게 된다. 이 각각의 장소는 그의 시적 발전에 약간씩 기여를 한다. 런던으로 말하면 1890년대에 그곳에서 당시의 주요 시인들을 만났고 1891년에는 시인 구락부 창설자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그 클럽에는 라이오넬 존슨, 어네스트 다우슨등 많은 90년대의 특징적인 인물들이 잇었다. 여기에서 그는 막연히 라파엘전파적이라고 할수 있는 시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는 시인으로서의 초기단계에 시인의 언어는 몽상적이고 영감적이며, 명모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슬리고 부근의 전원풍경으로부터는 무엇인가 훨씬 더 활력이 있고 실제적인 것 - 농부들의 생활과 그들의 민담에 대한지식 - 을 얻었다. 더블린에서 아일랜드 민족주의 물결의 영향을 받았는데, 문학을 노골적인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려는 사람들과 바로 의견 충돌을 일으키긴 했으나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시가 아일랜드 문화의 갱신에 공헌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엇다. 더블린, 런던, 슬리고, 이 세 곳의 영향이 연대순으로 전개되는 것은 아니므로 - 그는 생애의 초반에는 줄곧 이 세 곳을 왔다갔다 하며 지냇다 - 따라서 우리는 때로 시인 구락부의 영향하에 쓴 일군의 몽상적인 시들 가운데에서 슬리고의 민담에 근거한 시를 보게 되는 수도 있고, 혹은 전적으로 그 음조에 있어서 라파엘전파적인 서정시 속에서 아일랜드의 민족주의적 감정의 메아리를 보게 되는 수도 있다.

    그러나 Yeats의 시적 경력은 꽤 분명하게 몇 개의 주요 시기로 구분이 된다. 그는 90년대의 런던 시인들에게서 배운 자의식적인 낭만주의 전통 속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그는 슬리고의 경험에서 유래한 시들을 쓰고 있었다. 그것은 차분하게 정확을 기한 자연의 이미지, 시골의 지명, 민담에서 나온 주제 등을 담고 있었다. 이 시기 후반에는 더블린의 문학 써클들 때문에 아일랜드의 옛 영웅전설과 현대 아일랜드의 전원에서 나온 민속의 전통은 Yeats의 초기시의 꿈결 같은 이미저리 위에 이와는 통상 관련되지 않은 위엄과 스타일을 부여하였으며 Yeats로 하여금한결같이 보다 소박하고 대중적인 스타일을 추구하도록 만든 것이 바로 이 아일랜드 민족주의이다. 또한 자신의 초기시들을 나중에 인쇄할 때 시어를 더 팽팽한 것으로 바꾸기도 하고, 보다 자기도취적인 낭만적 이미저리는 제거해 버리는 등 수정작업을 하는 습관이 Yeats에게 있었음을 아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2기의 특징으로는 Yeats 자신이 시적인 이상을 잘못알고 있을을 깨닫고 '비 인격적인 아름다움을 포기하고 정상적이고, 정열적이며, 분별력이 있는 자아"를 지니고자 하는 바램을 갖게 되며, 미모의 여배우이자 아일랜드 민족주의자 Maud Gonne에게 보낸 사랑에 대한 감정이 2기의 시에 많이 반영이 된다.

    3기에서는 2기의 특징인 정밀성의 획득과 구어적인 것과 형식적인 것을 결합시키는 기법에 경귀적 요소뿐 아니라 형이상학적인 요소까지 더하게 된다. 또한 서로 다른 종류의 리듬을 가지고도 실험을 계속 하였는데, 상징의 언어에 대한 탐색과 비의사상에 대한 연구도 병행을 하였다. 그리고 1917년에 결혼한 그의 아내가 내 놓은 자동기술(automatic writing)은 이 시기의 그의 상징체계의 구성요소가 된다.

    4기는 그의 가장 원숙한 시기이며, 나선형 계단, 회전하는 팽이, 소용돌이꽃 등 모든 종류의 나선형이 중요한 상징이 된다. 그것은 역사 및 인격에 대한 Yeats의 철학과 결부되어 있을 뿐 아니라 처음부터 그를 사로잡았던 그 모순의 일부를 해소하는 수단 으로 사용되어 지기도 한다.

    5기는 회춘기라고도 하며, 다시 삶의 격동 속으로 돌아오고 그의 최후의시들은 제어된 그러나 놀랄 만한 야성을 띄게 된다.

    1931년 1월 그가 사망하였을 때 그는 대단한 양의 시를 이세상에 남겼다. 그 시들은 그힘에 있어서나 다양성에 있어서나 의심할 나위 없이 그가 영어로써 시를 쓴 20세기의 시인들 중 가장 위대한 시인임을 입증해 주고 있다.

    여기서 부터는 숙명여대 영문과 이경희님의 홈페이지에서 인용을 해온것입니다

    Yeats는 20-30년대 초반부에 조극에서 뿐만이 아니라 ‘개혁된 세상’이라 불리는 삶의 전반적인 부분에서 일어나고 있는 격변과 변화에 영향을 받았다. 두번의 전쟁은 모든 것을 완전히 전복시켰고 사회적 가치기준도 사라지거나 뒤바뀌었다. 낭만주의, 민족주의에 반기를 드는 것이 유행인 추세이기도 했다. Yeats는 시는 머릿속으로 생각한 막연한 생각이어서는 안되며 몸으로 생활로 빚어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따라서 그는 추상화, 일반화를 싫어하고,‘생활이란 보편화될 수 없다’라며 을 중요시했다. 따라서 그의 시는 엘리엇과는 대조적으로 자신의 가 많이 반영되어있다.

    Yeats가 영국에 유학을 갔을때 그는 art for art's sake, symbolism, pre-rapaelite 등의 운동을 겪는다. 그는 이런 운동들의 많은 영향을 받는데, 따라서 그를 (아래 부분 참조)라고도 하며 ireland? independence를 위해 노력했기에 라고도 이해되어진다.

    Yeats는 로도 이해되고 있다. Yeats가 일관되게 다루는 주제는 존재의 통합, 이다. 그는 william blake의 '반대가 없으면 진보도 없다'는 이론에 동의해서 모든 존재의 끊임없는 을 인식했다. 꿈, 이상, 현실의 에 대해 항상 고민했으며 그 gap으로 인해 항상 struggle했다. 그의 시는 영혼과 육체, 삶과 죽음, 현실과 이상, 순간과 영원 등과 같이 상반 대립되고 있는 요소들을 인식하고 이들 사이에서 비롯되는 갈등을 겪으며 궁극적으로는 그 상반된 요소들의 통합체인 실체를 추구하는 것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그런 존재의 통합을 위해 Yeats가 사용한 것은 이었다. symbolism은 ‘symbol as the means by which the natural and supernatural can be fused and retained’이다. 즉, 모든 사물이 가지고 있는 nature와 supernature를 fuse, understand 하게끔 하는 것은 symbol 밖에 없다는 것이다. 문명의 이기가 자리잡고 있는 시기에 Yeats는 meterial, physical한 것이나 spiritual한 것, 둘 중 어느 하나에만 치우치지 않았는데 이에 대해 그는, symbol을 활용하면 이 두가지를 fuse해서 둘 다 잡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또한 visionary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 visionary는 꿈꾸는게 실제처럼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다.

    후기의 Yeats는 로도 이해되어진다. 여기서 vacillate는 추가 왔다갔다 하는 것을 의미한다. Yeats는 자신의 vision, symbol에 대한 규칙과 myth를 만들어낸다. 그는 symbolism에서 어느정도 한계를 느끼고, 자신의 작품성, 인격 자체, 예술인으로서 어느 정도 정리하는 시기가 왔다. 그 후 그는 여러 갈등 사이의 gap을 좁히려면 symbol 자체보다는 그 갈등의 원인이 되는 두 요소를 , 왔다갔다하면 그 두가지를 동시에 잡을 수 있음을 깨달았다. 따라서 그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둘 다 택해서 그 중간을 왔다갔다 한다.


    : 1850년대 이후의 큰 주제는 anti-romanticism, anti-poetry, realism으로 가는 경향이었고 산업혁명에 앓아 너무 이상적인 것에 대해 냉소적이 되었다. 이런 시기에서도 유일하게 시에 대한 movement가 일어났는데 이것이 바로 pre-rapaelite 운동이다. 이 운동의 멤버는 minor 시인이었지만 그 이후의 시인들은 거의 모두가 영향을 받게 되었다. 이 운동은 rossetti, morris 등이 1848년에 결성한 청년 예술가들의 모임이다. 물질주의에 대한 혐오와 당시 높이 평가되던 문예부흥 말기의 인습적 예술을 버리고 rapael 이전의 청신한 화풍으로 돌아가서 순수한 아름다움, 예술을 위한 예술(art for art's sake)을 추구하는 운동이다.

    : 이 운동의 내용은 예술은 모름지기 현실 사회의 논쟁적인 문제와는 무관해야 하며 고도의 세련된 스타일로 미를 찬양하는 일에만 국한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그들은 예술의 자주성에 대한 그들의 신념, 즉 예술작품은 그 자체로서 독특한 가치를 지닌다는 견해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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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ST MODIFIED: 2017/01/18